이 글은 우리학교에서 헌법을 가르치는 박종보 교수님이 법대 자유게시판에 쓰신 영화 리뷰이다.
무단펌질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비영리목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 것을 교수님도 원하시지 않을까 싶어
올려보았다. 개인적으로 혼자만 읽기엔 너무도 아까운 글이어서...
지난 1월 13일 토요일 저는 모처럼 가족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작은 아이와 배드민턴 치면서 놀아주기, 미뤄뒀던 큰 아이 pmp 애프터서비스 받아 주기, 집사람과 영화 봐 주기(?), 다친 무릎 테스트 겸 집사람과 동네 뒷산 2시간쯤 같이 등산해 주기(?)...
금요일 저녁에 집사람에게
``실은 우리 동호회 내일 큰 등산 행사 있는데, 무릎 통증 때문에 안 가기로 했어요. 일할 기분도 아니니 학교에도 안 나갈 거요. 내일 뭘 하면 좋겠소?`` 하고 물었습니다.
집사람 반응은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그동안 주말마다 운동 아니면 출근이니, 가족과 함께 지낸 적이 없지 않아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 주장이었지만, 논쟁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일단 수긍하고, 토요일을 같이 즐겁게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는데, 집사람은 `데자뷰`를 저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제안했고, 저의 안이 채택(?)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큰 스케일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입니다. 액션, 모험, 우정, 가족애, 인류애, 사회정의에 로맨스까지 버무린, 재미와 감동을 겸한 영화입니다. 각본이 탄탄하고, 연기와 연출이 출중하며, 편집이 너무나 깔끔해서 2시간 20분이 넘는 긴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감 넘치고 박진감 있습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시가전이나 무장 헬기까지 등장하는 전투 장면 같은 것이 폭력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헐리웃 영화에 흔한 buddy movie, 즉 전혀 이질적인 두 남자가 우연히 만나 같은 목표를 향하여 동행하는 이야기입니다. 시에라리온 반군과 백인 용병의 추적 등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 1백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원석을 찾는 플롯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아프리카의 내전이 빚어내는 온갖 종류의 참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무차별 살인, 신체 훼손, 가족의 생이별, 노예 노동... 특히 섬뜩한 것은 어린 아이를 납치해서 세뇌 교육과 마약 흡입 등을 통하여 살인 병기로 변신시키는 과정입니다. 모두 우리가 외신 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 것들인데, 그것을 실감나게 `느끼게` 해 주는 것은 바로 영화예술의 힘입니다.
이 영화의 미덕은 휴머니즘을 말하되 그것을 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비극에 당신도 책임 있다``고 함부로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성이 메마른 사람이 아니라면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나의 탐욕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게 만듭니다. 영화 말미에 런던의 보석상점에 진열된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잠깐 비칩니다. 예전 같으면 너무나 당연히 ``와! 어쩜 저리 아름다울까? 가격은 얼마나 할까?`` 하는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속물적 관심이 싹 사라지고, ``별것 아닌 저 돌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걸까?`` 하고 자문하게 됩니다.
헐리웃 상업영화답게 오락물로서도 괜찮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앞서 이념 과잉으로 흐르는 일이 없이, 차분하게 얘기를 들려줄 뿐입니다.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도 없거나 짧게 지나갑니다(총탄이 신체를 관통하거나 선혈이 낭자한 표현기법에 우리가 익숙하다는 전제 하에서). 여느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현란한 특수효과와 과도한 액션으로 시각을 흔들어 놓아 영화 끝난 후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없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암울한 상황과 상관없이 화면에 펼쳐지는 아프리카의 자연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도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미국 TV 홈코미디 등에서 깜찍한 아역으로 출발한 미소년이, 영화 `타이타닉`에서는 미남 청년으로 성장해 뭇 여성을 울렸지만, `갱스 오브 뉴욕`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터프가이는 못 되겠다 싶었는데, 이 영화에서 전직 용병이자 무기와 다이아몬드 밀매꾼인 무정부주의자로 나와서 감동적인 성인 연기를 펼쳐 보였습니다(1974년생으로 만 32세). 그의 연기 인생에 큰 전기(轉機)가 될 것 같습니다.
미국 여기자로 나온 제니퍼 코널리도 배역에 딱 맞아 떨어지더군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어린 시절 로버트 드니로가 화장실 나무 벽 틈새로 무용하는 모습을 훔쳐보던 그 예쁜 소녀는, 한창 꽃다운 20대 때에는 작품 운이 별로 없더니, 나이 서른을 넘겨 출연한 `뷰티풀 마인드`에서 노벨상 수상 수학자 존 내쉬의 제자이자 부인 역을 열연하여, 2002년도 골든글로브, 미국과 영국 영화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죠.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는 부드럽고 지성적인 외모 안에 뜨거운 열정과 강인한 정신, 숭고한 정의감을 지니고 있는 기자 역을 잘 소화해 내었습니다(1970년생으로 만 36세).
이 영화에는 베드신은커녕 그 흔한 키스신 한 번 안 나옵니다. 그런데 로맨스라니? 그렇습니다. 육체가 아니라 정신으로 하는 사랑을 보여 줍니다. 디캐프리오와 코널리가 위성전화로 마지막 통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감성이 풍부한 분은 눈물 흘릴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도 가슴이 짜~안해질 겁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경제적 이득(?)도 얻었습니다. 제 집사람은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오느라 결혼할 때 패물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것에 일종의 한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살림이 풍족해지면 보석류 일습까지는 아니라도 제대로 된 2~3 캐럿 다이아 반지 하나쯤은 선물 받고 싶어 하는, 못다 채운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 이제 다이아 반지 필요 없어!`` 하고 선언하더군요.
제가 ``왜 그래~애, 아프리카 내전 자금으로 사용되는 `피 묻은 아이아몬드`는 전 세계 유통량의 1% 미만이래요. 비록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장악하고 공급량을 조절하여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드비어스 회사의 주장이긴 하지만...`` 하고 대꾸했더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런 비극적인 사연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물건을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에요`` 하는 답이 돌아옵니다. 영화의 힘! 참 대단하죠? 그리고 저 큰 돈 건졌죠? 그런데 돌아서니 새로운 고민(?)이 싹트네요. ``다이아 반지가 아니면 뭘 해 줘야 하는 거지?`` 물론 아직 형편이 그 정도로 넉넉하지는 않아, 언제 현실로 닥칠지 알 수 없는 걱정이긴 하지만.
** 작성 후기 **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탈출하여, 소년병으로 끌려간 아들을 찾아 나서는 시에라리온 어부 역을 맡은 흑인 배우 디몬 하운수(Djimon Hounsou)는 아프리카 출생으로 다양한 영화에 조연급으로 출연했지요. `글래디에이터`에서는 러셀 크로우의 검투사 동료로, `아일랜드`에서는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릿 조핸슨(스웨덴 식으로는 요한손)을 쫓는 용병대장으로 나왔습니다. 주연급으로 나온 영화는 흑인 노예들의 선상반란 실화를 다룬 `아미스타드`가 처음이었고, 이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도 주연급 배역을 맡았습니다.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디캐프리오와 대비되는 도덕적이고 진지한 캐릭터(다소 교과서적이긴 하지만)를 잘 연기했지요. 영화의 중심축은 `디캐프리오와 하운수` 커플인데, `디캐프리오와 코널리` 커플 위주로 소개한 저도 은연 중 백인우월주의에 물든 사고방식을 가진 건 아닌지 반성합니다. (어쨌든 저는 남자들의 우정과 모험보다는 남녀 간의 사랑 얘기가 더 좋나 봅니다.^^)
현 한양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미국 New York 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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