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570번지.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판잣촌인 '구룡마을'을 지칭하는 곳이다.
여기는 강남에서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동네는 행정 지도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ghost town이다.
집 대부분은 사유지를 불법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세대별 주소도 없다.(20년간 평온, 공연한 점유로 인한 소유권취득이 적용되는 사람들은 불법이 아니려나..일단 등기가 안되어 있을 테니;;)
처음 여기를 방문했을 때 ‘구룡마을 주민자치회’라는 간판이 걸린 망루가 위압감을 주었다.
중세시대에 성 외곽에서 적들의 침입을 감지하기 위해 만든 시설물 같은 느낌이랄까.
투쟁 구호가 여기 저기 새겨져 있는 풍경은 여기를 방문한 내가 '타자'이며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듯 하였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요즘은 무척이나 찾기 힘든 생활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여기에서는 타워펠리스가 보이기 때문에 이를 비교하는 사진도 많이 찍히는 편이다.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어르신 몇 분이 마을 입구에 서 계셨는데
여기저기 둘러보며 들어오는 어린 학생을 보고 어디로 가느냐며 물어보셔서
일단은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둘러댔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순간이었다.
내 옷차림은 빈티지 느낌의 검은색 반바지에, 국방색 독일연방군 야전상의였기 때문에 약간 구질구질해보이는 편이었는데 이런 옷차림을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의 주민 80% 이상은 집 안에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공동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들었는데, 그걸 직접 보니 약간 생소했다.
구룡마을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화재다. 이곳은 강남구 유일의 화재경계지구라 한다.
2004년에는 전기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해서 20분 만에 집 세 채를 태웠다는...
판잣집과 판잣집 사이에 난 좁은 골목에는 LPG 가스통들이 가깝게 서 있다.
아주 위험 천만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그에 가세해서 가스 호스, 전선 등이 얽혀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은 항상 화재 위험을 안고 사는 것이다.
한가지 눈에 들어온 것은 판잣집에 설치된 스카이라이프 안테나였다.
정보화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우리나라도 평등이 이뤄지고 있는 것인모양이라고 생각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찌 되었든 이곳에서는 첫째도 불조심, 둘째도 불조심, 셋째도 불조심이라고 한다.
소방차가 들어 오기에는 길도 좁은 편이고 집의 건축재료도 가연성, 불타기 아주 좋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한적한 마을은 어떻게 보면 농촌의 평화로움도 가지고 있다.
평화로워보이는 풍경들. 보는 관점에 따라 조용한 농촌을 연상시킨다.
길을 지나다 보니 비쩍 마른 개 한쌍이 보였다.
마침 어느 아주머니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지나가시던 중이었는데
개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개새끼가 주인이 없어요. 사람들 버리는 쓰레기 먹고 크는 것 같은데. 학생 조심해요 조심해."
라고 말씀하셨다.
목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부터 주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인으로부터 버림받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비쩍 마른 몸을 이끌고 마을을 떠도는 개들.
88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정부가 대대적인 빈민가 철거작업을 하면서 이곳까지 오게 된 구룡마을 주민들과 비슷한 운명이랄까.
자전거를 타며 노는 저 아이는 타워펠리스를 보며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양극화'를 잘 나타내 주는 사진.
재산상 가치가 낮은 판잣집(개발이 되면 물론 딱지 값이 좀 나가겠지만)과 수십억대의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은
사회 격차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우리 사회의 현 주소이다.
구룡마을재계발 얘기가 나오면서 위장주민도 등장했다고 하는데, 이런 주민의 집앞에는 고급 자동차가 있고
내부는 에어컨까지 갖춘 고급스런 실내디자인이 특징이라고 하니...(동네주민들은 이런 집을 '호텔'이라 부른다.)
개나 고양이나, 고달픈 삶을 살긴 마찬가지인 듯.
구룡마을을 방문하면서도 사실 주민들의 삶과 고뇌에 대해 대체 나는 얼마나 공감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었던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 아직 22살의 청년으로서는 이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의미있는 것은 무엇이고 덧없는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정답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있다고 하여도 사람마다 다른 것일지도..
흠...결론 부분이 좀 엉뚱한 곳으로 새는 것 같은데,
아무튼 보수적 성향이 강한 나로서도 양극화와 관련해서는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싶다.
도곡동 살던 시절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이사를 2번 다니면서 서울의 이모저모에 관심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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